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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다임 상장 사태로 본 국장과 미장의 근본적 차이

핵발전소 2026. 8. 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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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하루 만에 -10.3%

2026년 8월 6일, SK하이닉스 주가가 하루 만에 10.3% 폭락했다.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 DRAM 시장 점유율 1위를 창립 이래 처음 달성하고, 분기 순이익이 수십조 원대를 기록하던 회사였다. 주가를 끌어내린 건 다름 아닌 "핵심 자회사를 쪼개서 상장시킬 수도 있다"는 뉴스 한 줄이었다.

이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아깝다. 한국 증시가 오랫동안 앓아온 고질병과, 미국의 마이크론이 가고 있는 정반대의 방향이 이 사건 하나에 다 들어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4단으로 쌓인 상장 구조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인텔의 낸드플래시·SSD 사업을 인수하면서 품게 된 미국 자회사다. 처음엔 8조 원대 적자를 내던 애물단지였지만, AI 데이터센터용 기업용 SSD(eSSD) 수요가 폭발하면서 분기 영업이익 1조 원을 넘기는 알짜 회사로 변신했다. 과거 8조 원의 적자를 냈던 솔리다임은 AI 데이터센터용 eSSD 품귀 속에 분기 영업이익 1조 원대를 돌파하며 존재감을 키웠고, 기업가치는 50조 원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회사를 상장시키려는 방식이다. 현재 SK그룹의 지배구조는 최태원 회장 → SK㈜ → SK스퀘어 → SK하이닉스로 이어진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지난 1월 중간 지주사 'AI컴퍼니'를 세우고 그 밑에 솔리다임을 배치했다. 즉 지주사 SK㈜부터 최종 사업회사 솔리다임까지 무려 4단계의 상장(혹은 상장 예정) 법인이 쌓이는 구조다.

  • 1단: SK㈜ (그룹 지주사)
  • 2단: SK스퀘어 (중간 지주사, SK하이닉스 최대주주)
  • 3단: SK하이닉스 (핵심 캐시카우)
  • 4단: 솔리다임 (미국 나스닥 상장 추진 자회사)

이런 배치가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간 지주사 AI컴퍼니를 세운 것은 국내 물적분할 규제를 피하고 미국 증시 직상장이라는 경로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에서 자회사를 물적분할해 상장하려면 기존 주주 보호를 위한 여러 규제를 거쳐야 하지만, 해외 자회사의 해외 증시 직상장은 이 규제망을 우회할 수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공정거래법 제18조는 일반지주회사 체제에서 국내 계열사에 한해 원칙적으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까지, 즉 최대 3단계까지만 출자를 허용한다. 지주회사가 손자회사에 직접 출자하는 것도 금지되고, 손자회사가 국내 계열사 지분을 갖는 것도 원칙적으로 막혀 있다. 이 규제의 취지는 명확하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여러 단계의 회사를 지배하며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옥상옥' 구조, 순환출자·부실 계열사로의 부당 지원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SK그룹의 이번 구조는 SK㈜-SK스퀘어-SK하이닉스까지가 국내 3단계이고, 그 아래 해외 법인인 AI컴퍼니를 거쳐 솔리다임까지 이어지면 사실상 4단계가 된다. 솔리다임이 해외 자회사이기 때문에 국내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출자 규제를 직접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이 이 구조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고리다. 국내 대기업집단 규제의 근간이 3단계 출자 제한인데, 그 제한이 닿지 않는 해외 법인을 한 단계 더 쌓아 올린 초유의 사례라는 점에서, 단순한 '쪼개기 상장'을 넘어 국내 규제 체계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왜 주주들이 분노했나: 지분가치 희석의 구조

한국 주식시장에서 "쪼개기 상장"이 욕을 먹는 이유는 명확하다. 모회사 주주 입장에서 보면, 잘 나가는 사업부가 별도 법인으로 떨어져 나가 상장하는 순간 그 사업의 성장 과실을 새로운 주주들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토스증권 이영곤 연구원은 이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솔리다임이 별도로 상장할 경우, 기존에 SK하이닉스의 연결 실적으로 반영되던 사업 가치가 별도 상장법인으로 분리되어 평가받게 된다"며 "현금흐름의 귀속 구조와 최종적인 자본배분 권한이 변동되면서 기존 주주가 누리던 경제적 지분 가치가 희석될 우려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룹 지배구조에 있다.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약 20%를 가진 SK스퀘어이기 때문에, SK하이닉스가 배당을 하더라도 그 현금은 SK스퀘어를 거쳐 상위 지주사인 SK로 이동해야 하는 구조다. 즉 SK그룹 전체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현금을 그룹 전반의 성장동력으로 쓰고 싶은데, 배당이라는 정공법으로는 세금과 지분율 문제로 비효율이 발생한다. 그래서 나온 분석이, 이번 상장 추진의 본질은 "단순한 자금 조달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룹 전체의 자본 배분과 지배구조의 한계를 우회하기 위한 셈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미래에셋증권 김영건 연구원은 솔리다임 상장 추진이 인수합병 투자금 회수와 미국 내 후속 투자를 위한 재원 확충 성격이며, 최대 4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까지 기대된다고 봤다. 솔리다임 지분을 매각해 투자금을 모집하면 약 15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의 미국 내 투자 여력이 확보된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8월 5일 해명공시를 통해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되거나 한 달이 지나면 다시 공시하기로 했으며 재공시 예정일은 9월 4일이다.

그럼에도 주가는 이미 반응했다. 시장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보다 "이런 구조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에 더 크게 반응한 셈이다.

마이크론은 정반대로 간다

IR 공식 발표 자료 (IR Presentation) 원문

 

같은 시기 미국의 마이크론은 전혀 다른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다. 마이크론 경영진은 실적발표 자리에서 초과 현금의 100%를 시간을 두고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방침과, 220억 달러 규모의 고객 계약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숫자로 보면 이 발언의 무게가 더 실감난다. 마이크론은 최근 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346% 증가한 414억 6천만 달러를 기록했고, 순이익은 282억 4천만 달러에 달했다. 반면 주당 배당금은 여전히 15센트 수준에 머물러 있어, 벌어들이는 돈과 실제로 돌려주는 돈 사이의 격차가 이번 메모리 초호황이 얼마나 극단적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신호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크론의 자본배분 원칙은 비교적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다. 2018년 이사회가 1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승인한 이래 buyback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고, CFO 마크 머피는 배당을 최근 늘리긴 했지만 주주가치를 환원하는 주된 방식은 여전히 자사주 매입이라고 밝혔다. CEO 산제이 메흐로트라 역시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이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물론 마이크론도 우선순위가 있다. 지금은 AI 메모리용 클린룸 capacity 확충에 분기 71억 달러를 쓰는 등 설비투자가 먼저이고, 주주환원 확대는 그 다음 단계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방향성 자체는 명확하다 — 사업이 잘 되면 그 과실은 결국 기존 주주에게 돌아온다는 약속이고, 시장은 이를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모습이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마이크론이 2027 회계연도에 최대 317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설 수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국장과 미장, 무엇이 다른가

두 회사를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라는 재료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자본배분의 방향이 다르다. 마이크론은 잘 버는 사업부의 현금을 기존 주주에게 돌려주는 쪽(배당·자사주 매입)으로 가닥을 잡는다. SK하이닉스(정확히는 SK그룹)는 잘 버는 사업부를 아예 별도로 떼어내 새로운 자본을 유치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전자는 기존 주주의 몫을 지키는 방식이고, 후자는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들이며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를 상대적으로 옅게 만드는 방식이다.

지배구조의 복잡성이 다르다. 마이크론은 단일 상장 법인이다. 얼마를 벌든 그 현금의 배분 권한은 마이크론 주주총회와 이사회에 있다. SK하이닉스는 SK㈜-SK스퀘어-SK하이닉스-(솔리다임)로 이어지는 다단계 지주 구조 안에 있고, 이는 공정거래법이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3단계 출자 구조를 넘어서는 형태다. 이 구조에서는 각 단계마다 소액주주가 존재하고, 상위 지주사로 현금이 넘어갈 때마다 실질적인 가치 이전이 발생할 여지가 생긴다. 흔히 "지주사 디스카운트"라 불리는 현상이 반도체 대장주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시장의 신뢰 방식이 다르다. 미국 시장은 마이크론의 "100% 환원" 발언을 일단 신뢰하고 주가에 반영하는 편이다. 한국 시장은 "확정된 바 없다"는 공시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주주가치 희석)를 먼저 가격에 반영해 주가가 폭락했다. 이는 비이성적인 반응이 아니라, 과거 여러 차례의 물적분할·쪼개기 상장에서 실제로 소액주주가 손해를 본 학습효과에 가깝다.

마치며

이번 솔리다임 사태가 흥미로운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한국 자본시장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졌다는 점이다. 잘 버는 자회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 결정에 소액주주는 어떤 발언권을 갖는가. 토스증권 리포트의 표현을 빌리면 이번 사안은 "SK하이닉스가 AI 시대의 막대한 현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 주주의 가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시험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9월 4일 SK하이닉스의 재공시가 예정돼 있다. 그때 구체적인 상장 방식과 함께 기존 주주를 위한 보호장치(신주인수권, 현물배당, 자사주 매입 등)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제시되느냐가 이번 사건의 성격을 결정지을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이 사례는 "쪼개기 상장의 또 다른 반복"으로 기록될 수도, "국내 기업이 주주환원을 배우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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